1층 우편함에 경매 관련 등기가 한 장, 두 장 쌓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집 세입자는 이사를 가지 못했다. 한 달, 두 달, 여섯 달이 넘도록 그 자리에 묶여 있었다. 집주인은 파산했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전화도 문자도 닿지 않았다.
그 세입자의 일상은 그때부터 무너졌다. 매일 그 우편함을 지나며 새로 꽂힌 등기를 확인해야 했고, 보증금이 묶여 다음 집을 알아볼 수조차 없었다. 그렇게 반년이 흘렀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같이 무너졌다. 그 집을 중개한 사람이 나였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했으니 됐다, 하고 손을 털 수도 있었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어 준 것까지가 중개사의 일이라고 선을 그어도 누가 뭐랄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그러질 못했다. 그래서 그 여섯 달을, 나는 그 세입자와 함께 견뎠다.
보증보험이 있어도, 돈은 바로 들어오지 않는다
사람들은 흔히 생각한다. 전세보증보험만 들어 두면 무슨 일이 생겨도 보증기관이 바로 내 돈을 넣어 줄 거라고. 아니다. 보증보험은 사고를 막아 주는 장치가 아니라, 사고가 난 뒤 조건이 다 맞을 때 시간을 들여 돈을 돌려주는 장치다.
HUG 전세보증금반환보증의 이행청구에서는 사고 유형을 구분해야 한다. 임대차가 종료된 뒤 1개월이 지나도록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경우와, 경·공매 배당 후 보증금을 다 회수하지 못한 경우는 별도의 유형이다. 경매가 시작됐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청구에서 배당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반환사고로 청구할 때는 임대차 종료와 임차권등기 등 해당 요건을 갖췄는지 보증기관에 확인해야 한다. 임차권등기명령은 접수나 결정만이 아니라 실제 등기 완료를 확인해야 하며, 완료 후 이사·전출과 보증금 수령을 위한 명도 절차도 기관 안내에 맞춰 진행한다. 서류를 기다리는 동안 누구나 끝까지 그 집에 거주해야 한다고 일반화할 수는 없다. 내가 본 세입자가 오랫동안 이사하지 못했던 경험과 모든 가입자에게 적용되는 절차는 구분해야 한다.
한 가지 더. 적지 않은 세입자가 자기가 든 보증을 착각한다. 전세대출을 받을 때 끼는 보증은 은행이 빌려준 돈을 갚는 것을 보증하는 것이지, 내 전세금을 돌려받는 것까지 보증하는 게 아닐 수 있다. 내 보증금을 지키려면 전세보증금반환보증이 따로 있어야 한다. “보증 됐다”는 말만 믿었다가 정작 반환보증은 없었던 경우를 현장에서 종종 봤다. HUG의 담보인정비율 90% 기준은 신규 보증에는 2023년 5월 1일부터, 갱신 보증에는 2024년 1월 1일부터 적용됐다. 선순위 빚이 많은 집은 가입 단계에서 한도가 모자라거나 거절되기도 한다. ‘보증보험이면 100% 안전’이라는 믿음은 그 출발선에서 이미 흔들릴 수 있다는 뜻이다.
결국 싸움은 ‘자료’에서 갈렸다
설령 반환보증이 제대로 걸려 있었다 해도 끝이 아니었다. 더 막막한 건 그다음이었다. 보증기관은 그 세입자가 진짜 계약자가 맞는지를 증명하라고 했다. 실제로 살지도 않으면서 이름만 빌려준 가짜 임차인에게는 보증을 내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구가 끝이 없었다. 계약 당시 주고받은 카톡, 문자, 보증금을 본인 이름으로 이체한 계좌 내역, 계약금을 누구에게 어떻게 건넸는지까지. 몇 년 전 일을, 그 오래된 자료를 전부 끌어모아 제출하라는데 세입자는 정말 애를 먹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그 세입자와 주고받은 카톡과 문자를 갖고 있었고, 임대인과 나눈 기록도 남아 있었다. 중개하면서 흘려보내지 않고 남겨 둔 그 대화들이 결정적인 증거가 됐다. 그게 있어서 그나마 길이 열렸다. 만약 그것마저 없었다면 얼마나 더 진득한 진흙탕 싸움이 됐을지, 나는 짐작도 못 한다.
그래서 전세를 앞둔 사람에게 꼭 말해 주고 싶다. 보증보험을 들었다는 사실 하나에 안심하지 말고, 계약서와 보증서, 보증금 지급 내역, 집주인·중개사와 나눈 중요한 대화를 보관해 둬라. 가능하면 임차인 본인 명의 계좌에서 보증금을 송금하고, 가족 등 다른 사람이 대신 송금한다면 누구의 보증금을 어떤 관계로 지급한 것인지 설명할 자료도 남겨야 한다. 본인 이름이 아닌 송금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보증이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 계약과 지급을 확인할 증거는 필요하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그런 집에 애초에 들어가지 않는 일이다. 사기를 치는 쪽이 어떤 수법으로 앞에 돈을 세우는지는 전세사기 수법과 위험한 집 구별법에 정리해 두었다.
그 세입자가 결국 돈을 다 돌려받았는지, 나는 모른다. 어느 순간부터 그와도, 나와도 연락이 끊겼다. 끝을 알지 못한 채 이 이야기를 적는 게 마음에 걸리지만, 그래서 더 적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그 여섯 달을 아예 시작조차 하지 않도록.
HUG 반환보증 가입자는 HUG 안심전세포털의 보증이행 안내에서 사고 유형과 제출서류를 확인할 수 있다. 전세사기 피해자 결정과 지원은 반환보증 이행과 별개 제도이므로, 피해자 지원관리시스템(jeonse.kgeop.go.kr)에서 신청 대상과 현재 기한을 확인해야 한다. 먼저 자신의 보증서에 적힌 보증기관과 상품명을 확인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