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예전에 내가 전세 계약을 봐드렸던 분이 사무실로 찾아왔다. 연산동의 한 빌라에 살고 있는 세입자였다. 표정이 영 불안해 보였다. 우연히 건물 1층에서 이 건물 주인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정작 본인은 아무 연락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며칠 뒤, 앞으로 보증금과 관련된 연락은 다른 사람에게 하라는 문자 한 통이 왔다고 했다. 누구 말을 믿어야 할지, 정말 주인이 바뀐 게 맞는지 막막해서 한걸음에 달려온 것이다.
전세로 살고 있는데 집주인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내 계약은 어떻게 되나, 보증금은 누구한테 받나, 이 연락은 진짜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한 가지만 지키고 있으면 대부분은 걱정할 일이 아니다.
집이 팔리면 새 주인이 계약을 그대로 떠안는다
법은 이 상황을 명확하게 정해두고 있다. 집이 팔려 주인이 바뀌면, 새 주인이 이전 주인의 임대인 자리를 그대로 물려받는다. 계약은 사라지지 않는다. 새 집주인에게 통째로 넘어갈 뿐이다. 그래서 세입자는 원래 계약 조건 그대로, 약속한 기간이 끝날 때까지 그 집에서 계속 살 수 있다.
보증금도 마찬가지다. 보증금을 돌려줄 의무까지 새 주인에게 함께 넘어가고, 오히려 이전 주인은 그 의무에서 벗어난다. 그래서 만기가 되면 세입자는 이전 주인이 아닌 지금의 새 주인에게 보증금을 돌려달라고 해야 한다. 이건 세입자가 동의하거나 통지를 받아야 하는 절차도 아니다. 집이 팔리는 순간 법에 따라 자동으로 일어난다. 참고로 두 주인끼리 ‘보증금 책임은 넘기지 않기로 한다’는 약속을 했더라도, 그건 세입자에게 불리해서 효력이 없다.
단, ‘대항력’이 있어야 한다
여기에는 한 가지 전제가 있다. 세입자가 대항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말은 어렵지만 내용은 간단하다. 그 집에 실제로 들어가 살고 있고, 전입신고를 해두면 된다. 이 두 가지를 갖추면 전입신고를 한 다음 날부터 대항력이 생긴다. 등기부에 따로 무언가를 올리지 않아도, 이 사실만으로 새 주인에게 내 계약을 주장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그래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이 이 대항력을 잃지 않는 일이다. 가장 흔한 실수가 잠깐 다른 곳으로 주소를 옮기는 것이다. 사정이 있어 전입신고를 잠시 뺐다가 그사이 집이 팔리거나 새로운 빚이 잡히면, 그동안 쌓아둔 대항력이 무너진다. 한번 들어갔으면 보증금을 다 돌려받고 나올 때까지 주소를 함부로 옮기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
계좌를 바꾸라는 문자가 와도 바로 보내지 마라
집주인이 바뀌면 세입자가 가장 먼저 받는 것이 바로 이 ‘계좌를 바꾸라’는 연락이다. 그런데 여기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문자만 보고 곧바로 그 계좌로 돈을 보내는 일이다.
순서를 거꾸로 하면 안 된다. 돈을 보내기 전에 먼저 등기부등본을 한 통 떼어 본다. 등기부의 ‘갑구’에는 지금 이 집의 주인이 누구인지 나온다. 문자를 보낸 사람의 이름과 갑구에 적힌 새 주인의 이름이 같은지, 그리고 알려준 계좌의 명의가 그 사람과 일치하는지를 확인한다. ‘을구’도 함께 본다. 새 주인이 빚을 잔뜩 끼고 산 것은 아닌지가 여기 나오는데, 이게 사실 더 중요하다. 등기부등본은 인터넷등기소에서 몇백 원이면 바로 뗄 수 있다.
혼자 등기부를 떼는 것이 막막하다면, 처음 계약을 진행한 부동산에 바로 물어보는 것이 가장 빠르다. 돈이 걸린 일은 혼자 헤매지 말고 곧장 확인하는 편이 낫다. 계약을 맡았던 사무실이라면 그 집의 사정을 알고 있어, 발품을 조금만 팔면 주인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그 내막까지 들을 수 있다. 그리고 가장 정확한 답은 결국 등기부가 쥐고 있다.
확인이 끝나기 전까지는 함부로 새 계좌로 보내지 않는 편이 안전하다. 그리고 받은 문자는 지우지 말고 캡처해 둔다. 나중에 돈을 누구에게 보냈는지가 문제가 될 때 근거가 된다. 이건 의심이 아니라 확인이다. 사람을 못 믿어서 그러는 게 아니다. 서류를 한 번 보는 것뿐이고, 그 한 번으로 대부분의 사고는 막힌다.
이럴 때는 한 번 더 따져야 한다
대부분은 새 주인에게 계약이 넘어가도 문제가 없다. 그런데 두 가지 경우에는 한 번 더 따져봐야 한다.
첫째, 새로 들어온 주인이 영 미덥지 않을 때다. 빚을 잔뜩 안고 집을 산 사람이라면 나중에 보증금을 제대로 돌려받을 수 있을지 불안해진다. 이럴 때 세입자는 집이 팔린 사실을 안 뒤 너무 늦지 않게 이의를 제기해, 새 주인에게 넘어가는 계약을 거부하고 이전 주인에게 보증금을 돌려달라고 할 수 있다. 새 주인이 미덥지 않다면, 무조건 그를 따라가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상당한 기간 내’라는 제한이 있어 미루면 안 된다.
둘째, 집이 빚 때문에 경매로 넘어가는 경우다. 매매는 새 주인이 계약을 무조건 떠안지만, 경매는 순위를 따진다. 내 대항력이 그 집에 먼저 잡힌 빚보다 앞서 있으면 낙찰받은 새 주인에게도 계약을 주장할 수 있다. 반대로 앞선 빚이 있었다면 그 계약은 경매로 정리되고, 배당에서 순위대로 보증금을 나눠 받게 된다. 그래서 처음 들어갈 때 등기부가 깨끗한지가 그만큼 중요하다.
그래서, 무엇부터 하면 되나
정리하면, 집주인이 바뀐다는 소식에 너무 놀랄 필요는 없다. 대항력만 지키고 있으면 계약은 그대로 새 주인에게 넘어가고, 보증금도 새 주인에게 받으면 된다. 다만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순서만 잊지 않으면 된다. 전입신고와 거주 상태는 그대로 유지하고 주소는 함부로 옮기지 않는다. 계좌를 바꾸라는 연락이 오면 곧바로 보내지 말고, 먼저 등기부등본을 떼어 새 주인과 빚을 확인한다. 받은 문자는 캡처해 둔다. 그리고 새 주인이 영 미덥지 않다면, 늦기 전에 이의를 제기할지 또는 전세보증보험으로 한 번 더 안전장치를 둘지 따져본다.
그날도 나는 세입자와 함께 등기부를 확인하고, 기존 집주인, 그러니까 이번에 집을 판 매도인에게까지 다시 한번 사실을 확인했다. 정상적인 매매가 맞았다. 그제야 그 세입자는 한결 가벼워진 얼굴로 돌아갔다. 사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문자 한 통에 곧바로 움직이지 않고, 서류 한 번 떼어 보고, 모르면 부동산에 물어보는 것. 그거면 충분하다.
끝으로 혹시 이 글을 보는 임대인이 있다면, 한 가지만 부탁하고 싶다. 집을 사고팔 때, 그 집에 사는 세입자가 불안에 떨지 않도록 미리 한마디 일러주면 좋겠다. 계좌를 바꾸라는 문자 한 통보다, 사정을 먼저 설명하는 연락 한 번이 서로를 훨씬 편하게 만든다.
※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를 정리한 것으로, 개별 사안은 대항력의 취득 시점과 등기부상 권리관계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다. 실제 상황에서는 등기부등본을 직접 확인하고, 필요하면 법률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