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이천 SKMS연구소에 2박 3일 일정이 잡혔다는 말은, 단순한 세미나 안내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주제가 AI 전환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기업에서 AI는 이제 신기한 기술 시연이 아니라, 회의실 안건으로 올라오는 문제가 됐습니다.
예전에는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실무 부서가 먼저 써보고, 효과가 보이면 위로 보고되는 흐름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AI 전환은 그 순서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문서를 빨리 만들고, 자료를 정리하고, 고객 응대를 자동화하는 수준을 넘어서기 때문입니다.
AI가 기업 안으로 들어오면 업무 속도만 바뀌는 게 아닙니다. 누가 판단할지, 어떤 데이터를 믿을지, 오류가 났을 때 누가 책임질지까지 같이 흔들립니다. 그래서 SK그룹이 AI 전환을 경영진 논의로 끌어올린 장면은 기술 뉴스보다 조직 뉴스에 가깝습니다.
기술보다 먼저 바뀌는 회의실
AI 전환을 AX라고 부릅니다. 디지털 전환이 업무를 전산화하고 데이터를 쌓는 과정이었다면, AX는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판단과 실행의 방식을 다시 묻는 단계에 가깝습니다. 쉽게 말해 “AI를 어디에 붙일까”가 아니라 “AI가 들어온 회사는 어떻게 일해야 하나”를 보는 겁니다.
예를 들어 보고서 초안을 AI가 만들 수는 있습니다. 시장 자료를 모으고, 요약하고, 여러 시나리오를 뽑는 일도 훨씬 빨라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를 그대로 믿을 수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숫자의 출처가 맞는지, 내부 보안 기준에 어긋나지 않는지, 고객 정보가 섞이지 않았는지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합니다.
이번 논의의 배경은 SK그룹이 경영진 차원에서 AI 전환, 즉 AX를 주요 의제로 다뤘다는 점에 있습니다. 관련 보도는 회의가 열렸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자료이고, 여기서 봐야 할 부분은 발표 문구보다 이후 조직 운영 방식입니다.
이 지점에서 회의실의 역할이 커집니다. AI 도구를 하나 도입하는 일은 실무 결정으로 끝날 수 있지만, AI를 전제로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일은 조직 전체의 약속이 필요합니다. 어떤 업무는 자동화하고, 어떤 판단은 사람이 끝까지 책임질지 정해야 합니다.
SK그룹처럼 여러 사업을 가진 조직에서는 이 문제가 더 복잡합니다. 반도체, 에너지, 통신, 배터리, 바이오처럼 사업 성격이 다르면 AI를 쓰는 방식도 같을 수 없습니다. 어떤 곳에서는 생산 효율이 먼저이고, 어떤 곳에서는 연구개발 속도가 먼저일 수 있습니다. 또 다른 곳에서는 고객 데이터를 다루는 보안 기준이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룹 차원의 AI 전환은 하나의 정답지를 나눠주는 방식으로는 어렵습니다. 공통 원칙은 필요하지만, 실제 적용은 사업별로 달라져야 합니다. 이때 경영진이 해야 할 일은 “AI를 쓰라”는 지시가 아니라, AI를 쓸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일입니다.
직원 입장에서도 변화는 바로 체감될 수 있습니다. 반복적인 문서 작성, 자료 검색, 회의록 정리, 내부 지식 검색 같은 업무는 AI와 함께 처리되는 비중이 커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만큼 사람에게는 다른 능력이 요구됩니다. 질문을 잘 만들고, 결과를 해석하고, 맥락에 맞게 판단하는 능력입니다.
경영진도 예외가 아닙니다. 예전에는 정리된 보고서를 받은 뒤 의사결정을 했다면, 앞으로는 계속 업데이트되는 데이터와 여러 가정이 담긴 시나리오를 놓고 판단해야 할 수 있습니다. 속도는 빨라지지만, 검증 장치가 없으면 위험도 같이 커집니다.
AI 전환이라는 말은 멋있게 들리지만, 실제로는 꽤 불편한 질문을 남깁니다. 지금 우리 회사의 데이터는 믿을 만한가. AI가 낸 답을 누가 검토하는가. 사람이 해야 할 일과 기계에 맡길 일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 이 질문을 피한 채 도구만 늘리면, AI는 혁신이 아니라 또 하나의 업무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이번 SK그룹의 AI 논의는 그래서 발표 자료보다 이후의 변화가 더 중요합니다. 회의가 끝난 뒤 어떤 부서에서 먼저 적용할지, 임직원 교육을 어떻게 설계할지, 데이터와 보안 원칙을 어느 수준까지 정리할지가 실제 결과를 가를 겁니다.
AI는 이제 기업 홍보 문구에만 머물기 어렵습니다. 회의실 안으로 들어왔고, 보고서의 순서를 바꾸고, 일하는 사람의 역할을 다시 묻고 있습니다.
이 회의 뒤에 남는 질문은 세 가지입니다. AI를 어느 부서에 먼저 넣을 것인가. 사람이 끝까지 책임져야 할 판단은 무엇인가. 그리고 기존 임직원은 어떤 방식으로 다시 훈련될 것인가. SK의 AI 전환은 이 세 질문에 답이 붙을 때부터 실제 변화가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