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계약을 앞두고 등기부등본을 뗀다. 근저당이 없으면 안심한다. 그런데 등기부에는 안 보이는 돈이 하나 더 있다. 집주인이 안 낸 세금이다. 이게 왜 내 보증금과 상관인지부터 짚어야 한다.
집주인 세금이 왜 내 보증금을 깎을까
집주인이 세금을 오래 안 내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그 집을 압류하고 경매나 공매로 처분할 수 있다. 이때 팔린 돈은 집주인이 받아서 세입자에게 돌려주는 구조가 아니다. 은행 대출, 체납 세금, 임차보증금이 정해진 순위에 따라 매각대금을 나눠 갖는다.
그래서 체납 세금이 내 보증금보다 앞선 순위라면 세금이 먼저 빠지고, 남은 돈으로 보증금을 받는다. 예를 들어 집이 경매에서 3억 원에 팔렸는데 은행 대출이 1억 원, 내 보증금이 2억 원, 나보다 앞선 체납 세금이 5천만 원이라고 하자. 집값이 3억 원이어도 순서대로 빠지면 내 보증금은 전액을 채우지 못한다.
체납이 있다고 무조건 세금이 먼저는 아니다
여기서 흔한 오해가 하나 있다. 체납 세금이 있으면 무조건 세입자보다 먼저 가져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순위는 임차인의 대항요건과 확정일자, 세금의 법정기일, 세금의 종류에 따라 갈린다. 쉽게 말하면 내가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를 갖춘 날과, 그 세금이 정해진 날 중에 무엇이 앞서느냐의 문제다. 내 확정일자가 세금의 법정기일보다 빠르면 그 세금보다 앞선다.
2023년부터는 보호가 한 겹 더해졌다. 그 집에 붙는 세금 가운데 법정기일이 내 확정일자보다 늦은 것은, 경매로 나눌 때 그 세금 몫만큼을 보증금에 먼저 배분하도록 바뀌었다. 법적인 우선순위 자체는 여전히 세금이 갖지만, 실제로 돈을 나누는 단계에서 세입자를 먼저 챙겨 주는 방식이다.
그런데 등기부만으로는 확인이 안 된다
문제는 이 체납을 계약 전에 알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등기부등본에는 집주인이 세금을 얼마나 밀렸는지, 그 세금의 법정기일이 언제인지가 나오지 않는다. 압류가 아직 등기되지 않았다면 등기부는 깨끗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래서 등기부가 멀쩡하다는 말과 세금 체납이 없다는 말은 같은 말이 아니다. 근저당만 보고 안심하면 놓치는 자리가 바로 여기다.
계약한 임차인은 세무서에서 열람할 수 있다
다행히 확인하는 길이 생겼다. 임대차 계약을 체결한 임차인은 임대차가 시작하는 날까지 집주인의 동의 없이도 미납 국세를 열람할 수 있다. 예전에는 집주인이 동의해 줘야만 볼 수 있어서 나쁜 집주인일수록 확인이 막혔는데, 그 문턱이 없어진 것이다.
방법도 어렵지 않다. 임대차 계약서를 들고 세무서에 가면 체납 내역을 확인할 수 있다. 예전에는 그 집 관할 세무서에서만 됐는데 지금은 전국 세무서로 넓어졌다. 다만 온라인 열람은 안 되고, 보증금이 소액이라 법으로 최우선 보호를 받는 금액 이하이면 열람이 제한된다. 세무서가 열람 사실을 집주인에게 알려 주기도 한다.
순서상 이 열람은 계약을 맺은 뒤에야 된다. 그러니 계약서에 미리 안전장치를 넣어 두는 것이 좋다. 계약 후 확인한 체납이 보증금을 위협할 수준이면 계약을 물리고 계약금을 돌려받는다는 특약을 넣어 두면, 뒤늦게 발견해도 빠져나갈 길이 생긴다. 잔금을 치르기 전에 확인하는 것이 핵심이다.
은행이 대출해 줬으니 안전한 집 아닌가요
세입자에게 가장 많이 받는 말이 이것이다. 등기부도 깨끗하고 전세대출도 잘 나왔는데 왜 위험하냐는 것이다. 은행이 돈을 빌려줬으면 검증된 집 아니냐는 뜻이다.
여기에는 오해가 있다. 은행이 확인하는 것은 은행 돈이 떼일지 여부다. 은행은 대출을 내주면서 그 집에 근저당을 잡고 앞순위를 확보한다. 그러니 집이 경매로 넘어가도 은행은 먼저 회수한다. 은행이 대출해 줬다는 것은 은행이 안전하다는 뜻이지 세입자가 안전하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그 대출 근저당은 내 보증금보다 앞줄에 선다. 그리고 은행은 집주인이 세금을 얼마나 밀렸는지까지 나 대신 확인해 주지 않는다. 대출 승인과 내 보증금의 안전은 다른 이야기다.
먼저 알았으면 이 집 안 구했을 텐데
체납을 뒤늦게 안 세입자들이 꼭 하는 말이 있다. 계약 전에 알았으면 처음부터 이 집을 고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다. 맞는 말이고, 바로 그 지점이 이 문제의 핵심이다.
앞서 말한 세무서 열람은 계약을 맺은 뒤에야 된다. 집을 고르는 단계에서는 체납을 확인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뜻이다. 순서가 어긋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남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계약서에 특약을 넣는 것이다. 계약 후 확인한 체납이 보증금을 위협할 수준이면 계약을 물리고 계약금을 돌려받는다는 문구다. 이렇게 해 두면 잔금을 치르기 전에 열람으로 확인하고, 문제가 있으면 빠져나갈 수 있다. 잔금일의 빈틈을 막는 근저당 설정 금지 특약과 같은 원리로, 서류에 한 줄을 남겨 두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계약 전에 집주인에게 납세증명서를 요구해 보는 것이다. 응하지 않는다고 강제할 수는 없지만, 떳떳한 집주인이라면 거절할 이유가 없다. 거절 자체가 하나의 신호가 되기도 한다.
성실한 집주인인지 보는 게 아니다
정리하면 이렇다. 집주인의 체납 세금은 집이 경매나 공매로 넘어갈 때 매각대금에서 내 보증금보다 먼저 빠져나갈 수 있고, 그만큼 돌려받을 보증금이 줄어든다.
그래서 집주인의 체납을 확인하는 것은 이 사람이 성실한 사람인지 평가하는 절차가 아니다. 경매가 시작됐을 때 내 보증금 앞에 어떤 돈이 서 있는지 미리 확인하는 절차다. 근저당을 확인하는 것과 똑같은 무게로 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이 글은 현장 경험과 공개된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한 참고용 정보다. 세금의 우선순위와 배분은 세금의 종류와 법정기일, 개별 물건의 권리관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구체적인 사안은 관할 세무서와 전문가의 확인을 함께 받기 바란다.
확인한 공식 자료
이 글은 아래 법령과 정부기관 공개 자료를 확인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