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이라는 말에는 한때 묘한 힘이 있었다. 신문에 그 세 글자가 한 줄 박히는 순간, 해당 구역의 공기가 바뀌었다. 낡은 빌라에 살던 집주인은 그날 밤 잠을 설쳤고, 전국에서 투자자들이 그 동네로 모여들었다. 근처 부동산 문을 열고 들어와 발품을 팔고, 동네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어느 집이 매물로 나왔는지 수소문했다. 그 구역에 작은 지분이라도 하나 걸쳐두면 몇 년 뒤 새 아파트가 손에 들어온다고들 했다. 말 그대로 로또였다.
지금은 다르다. 재개발이 추진된다는 소식은 여전히 나온다. 그런데 예전처럼 모두가 설레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구역 사람들이 먼저 계산기를 두드린다. 무엇이 달라진 걸까. 답은 한 단어에 있다. 사업성이다.
재개발에는 단계가 있다
재개발은 발표 한 번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다. 정해진 단계를 하나씩 밟아야 새 아파트가 올라간다. 추진위원회가 꾸려지고, 사전타당성조사를 거치고, 조합설립인가를 받고, 사업시행인가가 떨어지고, 관리처분계획인가까지 통과해야 비로소 철거와 착공이 시작된다. 공인중개사 시험의 부동산공법 과목에도 이 절차가 빠지지 않고 나온다. 그만큼 정형화된 흐름이다.
문제는 이 단계 하나하나가 짧지 않다는 데 있다. 추진위 구성부터 입주까지 10년이면 빠른 편이고, 중간에 한 번 막히면 15년, 20년도 우습게 흘러간다. 그사이 들어간 돈은 그대로 묶인다. 팔고 나오려 해도, 사업이 멈춰 선 구역의 물건을 제값에 받아줄 사람은 많지 않다.
모든 것은 사업성에서 갈린다
예전과 지금을 가르는 핵심이 여기에 있다. 단계마다 사업이 앞으로 나아가려면 조건이 하나 맞아야 한다. 사업성이다. 쉽게 말해, 헐고 새로 지었을 때 남는 것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을 가늠하는 숫자가 비례율과 분담금이다. 비례율이 높으면 조합원에게 돌아가는 몫이 크고, 낮으면 오히려 추가로 돈을 더 내야 한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공사비가 가파르게 올랐다. 같은 면적을 짓는 데 드는 돈이 늘면, 조합원이 떠안을 분담금도 함께 뛴다. 분담금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되면 사업은 그 자리에서 멈춘다. 조합 안에서 찬반이 갈리고, 소송이 붙고, 몇 년을 그렇게 보낸다. 심한 경우 지정됐던 정비구역이 통째로 해제되기도 한다.
예전에는 일단 재개발만 뜨면 사업성은 따라온다고 믿었다. 지금은 그 순서가 뒤집혔다. 사업성이 맞아야 재개발이 굴러간다.
돈이 새는 곳은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자. 그 사업성은 왜 자꾸 나빠질까. 구역에 재개발 바람이 불면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신호에 반응한다. 동의율이 높다더라, 어느 집 호가가 얼마 올랐다더라, 부동산 문턱이 닳도록 사람이 드나든다더라.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데 그 신호들 뒤에서 돈이 어떻게 새어 나가는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재개발 업무를 제대로 해본 사람은 그 뒤를 본다. 사업 하나를 굴리는 데는 곳곳에 돈이 들어간다. 주민 동의서를 받으러 다니는 인력에게도 인건비가 나가고, 홍보와 광고에도 돈이 든다. 정비업체와 설계, 감리에도 각각 비용이 붙는다. 중간에 시공사나 업체가 바뀌기라도 하면 그동안의 비용을 정산하고 새로 계약하는 과정에서 금액이 또 올라간다.
그런데 일반인이 가장 못 보는 비용은 따로 있다. 바로 시간이다. 사업이 한 해 두 해 늘어지는 동안 빌린 돈의 이자가 쉬지 않고 쌓이고, 착공이 미뤄지는 사이 공사비도 계속 오른다. 끌면 끌수록 돈은 불어난다.
그리고 이 비용들은 어디론가 사라지지 않는다. 재개발은 보통 그 구역의 집주인들이 모인 조합이 사업의 주체이고, 시공사는 공사를 맡으면서 사업비를 빌려주거나 보증을 서는 식으로 위험을 나눠 진다. 그래서 불어난 비용은 고스란히 비례율을 끌어내리고, 그 차액은 조합원의 분담금으로 돌아온다. 처음 들었던 추정 분담금이 사업 막바지에 훌쩍 뛰어 있는 경우가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1억이 10억’이라는 말의 빈틈
목돈을 들고 재개발 물건을 알아보는 사람이 가장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여기 1억을 넣어두면 몇 년 뒤에 10억이 된다는 식의 이야기다. 귀가 솔깃해지는 숫자다. 그런데 그 숫자에는 빠진 것이 너무 많다.
그 10억은 사업이 끝까지 굴러갔을 때의 이야기다. 몇 단계를 더 통과해야 하는지, 그사이 분담금을 얼마나 더 내야 하는지, 그 시간이 10년인지 20년인지는 그 말 안에 들어 있지 않다. 사업성이 무너지면 그 10억은 영영 오지 않는 숫자가 된다. 그동안 1억은 꺼낼 수도 없이 그 자리에 잠겨 있다.
목돈을 넣기 전 확인할 것
그래서 재개발 물건을 보러 갔다면, 호가나 예상 수익률보다 먼저 봐야 할 것이 있다. 지금 이 구역이 어느 단계에 와 있는지부터 확인한다. 추진위 단계와 관리처분 단계는 같은 재개발이라도 위험의 무게가 전혀 다르다. 그다음 추정 비례율과 추정 분담금 자료를 요청해 본다. 자료가 없거나 두루뭉술하다면, 사업성이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는 신호다. 과거에 이 구역이 정비구역에서 해제된 이력이 있는지, 조합 내부에 소송이나 갈등이 진행 중인지도 함께 살핀다. 이 정보들은 관할 구청 정비사업 담당 부서나 지자체가 운영하는 정비사업 정보 공개 시스템에서 상당 부분 확인할 수 있다.
재개발 투자는 1억이라는 숫자를 사는 게 아니라 그 구역의 사업성을 사는 일이다. 숫자보다 단계를 읽고, 분위기보다 자료를 확인하면, 적어도 10년을 묶일 자리에 목돈을 던지는 일은 피할 수 있다.
※ 이 글은 정보 전달을 목적으로 한 것이며 특정 투자를 권유하거나 만류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개별 구역의 사업성과 진행 상황은 시점에 따라 달라지므로, 실제 판단은 해당 지자체와 조합이 제공하는 자료, 그리고 전문가 상담을 함께 거쳐 내려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