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금 넣겠다는 손님에게, 그 방에서 사람이 돌아가셨다고 먼저 말했다

손님은 방을 보고 나서 계약금을 넣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바로 계좌번호를 알려주지 못했다.

건물에 누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시설이 고장 난 것도 아니었다.

그 방에서 예전에 노인 한 분이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내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내용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건물주와 당시 구급차가 왔던 것을 본 사람들 정도였을 것이다.

입을 다물고 계약을 진행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손님은 앞으로 그 방에서 생활할 사람이었다.

나는 결국 계약금을 받기 전에 내가 알고 있던 사실을 먼저 이야기했다.

사망 사실을 숨기지 않고 설명한 부동산 중개사의 빈 원룸 계약 사례

보안과 치안을 가장 중요하게 보던 손님이었다

그날 온 손님은 부모님과 함께 방을 보러 온 여성 손님이었다.

내가 올린 광고를 보고 찾아왔다.

월세 몇만원을 아끼는 것보다 보안과 주변 환경을 더 중요하게 보는 가족이었다.

골목이 너무 좁지 않은지, 밤에도 길이 밝은지,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편한지, 주차가 되는지를 계속 확인했다.

나는 그 조건을 듣자 떠오르는 방이 있었다.

큰 도로 쪽이고 주변도 비교적 밝았다. 주차도 가능했고 교통 조건도 손님이 원하는 쪽에 가까웠다.

실제로 방을 보여주니 손님도 마음에 들어 했다.

그리고 계약금을 넣고 싶다고 했다.

그때부터 내가 고민하기 시작했다.

시설 하자가 아니라 내가 알고 있던 과거 일이었다

누수처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하자라면 이야기는 오히려 단순했을 것이다.

문제가 있으면 현재 상태를 확인해서 설명하면 된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지금 방의 시설에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알고 있던 것은 그 방에서 사람이 돌아가신 적이 있다는 과거 사실이었다.

손님이 그 사실을 들으면 계약을 포기할 수도 있었다.

실제로 계약금까지 넣겠다고 한 손님이었다.

중개사 입장에서는 그냥 지나가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래도 내가 알고 있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계약을 진행하는 것은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말했다.

말을 듣자 손님은 방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내 이야기를 듣고 손님은 바로 결정하지 못했다.

그전까지는 마음에 들었던 방인데 사망 사실을 듣고 나니 느낌이 달라졌던 것 같다.

손님도 소름이 조금 돋는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계약을 재촉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방을 다시 추렸다.

처음 방과 조건이 완전히 같지는 않았지만 큰 도로 쪽이고 밤에도 너무 어둡지 않으며 주차가 가능한 곳들을 다시 보여줬다.

그때 손님이 휴대전화 화면을 하나 보여줬다.

같은 방 사진을 다른 부동산에서도 받은 상태였다

나에게 오기 전 다른 부동산에서도 연락을 받고 있었다.

손님이 보여준 메시지에는 내가 방금 보여준 방과 똑같은 사진이 있었다.

같은 매물이었다.

나와 상담하는 동안에도 그 방의 계약 가능 여부와 관련된 문자가 계속 들어오고 있었다.

그렇다고 다른 중개사가 사망 사실을 알고도 일부러 숨겼다고 내가 단정할 수는 없다.

그 중개사가 그 사실 자체를 알고 있었는지 나는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다.

나는 알고 있었고, 그래서 내 손님에게 말했다.

결국 몇만원 더 비싼 다른 방을 계약했다

손님은 부모님과 상의한 뒤 처음 방은 계약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내가 다시 보여준 다른 방을 선택했다.

월세는 처음 방보다 몇만원 더 비쌌다.

그래도 이 가족에게는 가격이 가장 중요한 조건이 아니었다.

주변이 밝은지, 큰 도로와 가까운지, 주차가 되는지 같은 생활환경을 더 중요하게 봤다.

그리고 본인이 살 집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내용을 충분히 설명해주는 것도 중요하게 받아들였다.

결국 다른 방으로 계약했다.

옆방에 누가 사는지도 궁금해했다

새 방을 결정하면서 손님은 옆방에는 어떤 사람이 살고 있는지도 물었다.

그 건물은 내가 이전에도 중개했던 곳이었다.

그래서 옆 호실 역시 예전에 내가 계약을 진행했던 사람이 거주하고 있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다만 지금 다시 이 글을 정리하면서는 그 사람의 성별이나 직업 같은 세부 정보까지 다른 임차인에게 전달할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자세히 알려주는 것과 건물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설명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면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내용보다 내가 실제로 확인할 수 있는 건물 출입 방식, 주변 환경, 공동시설 같은 정보를 설명하는 쪽을 택할 것이다.

계약이 끝난 뒤 아버지가 5만원을 건넸다

계약을 마치고 나서 손님 아버지가 5만원짜리 한 장을 건넸다.

저녁에 맛있는 거라도 먹으라고 했다.

나는 그날은 거절하지 않고 감사하게 받았다.

5만원 때문에 사망 사실을 이야기한 것도 아니었고 그런 것을 기대한 적도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돈은 기억에 오래 남았다.

계약금을 바로 받지 않고 내가 알고 있던 이야기를 먼저 꺼냈던 판단을 손님 가족도 나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망 사실은 현재 확인·설명서의 별도 항목은 아니다

이 경험을 다시 적으면서 현재 공인중개사법도 확인했다.

공인중개사법 시행령 제21조에는 중개사가 확인·설명해야 하는 사항으로 권리관계, 시설물 상태, 벽면과 바닥 상태, 일조·소음·진동 같은 환경조건, 교통과 입지조건 등이 구체적으로 정해져 있다.

내가 확인한 현재 규정에는 과거에 그 주택 안에서 사람이 사망했다는 사실이 별도의 확인·설명 항목으로 명시돼 있지는 않다.

그래서 이 글을 “사람이 사망한 집은 중개사가 법적으로 무조건 알려야 한다”는 이야기로 쓰고 싶지는 않다.

구체적인 사망 경위와 시점, 거래 과정 등에 따라 법적인 판단이 달라질 수 있는 문제를 내가 한 사건만으로 단정할 수도 없다.

이 글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실제로 선택했던 행동까지다.

누수 고지와 이 사건은 내가 고민한 지점이 달랐다

나는 다른 전세 계약에서 과거 누수 사실을 알고 있다가 계약 전에 세입자에게 설명했던 적도 있다.

누수는 시설과 주택 상태에 관한 문제라 실제 상태를 확인하고 설명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번 사건은 달랐다.

방 자체가 고장 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나는 손님이 계약을 결정할 때 그 사실을 알고 싶어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두 사건을 똑같은 ‘하자 고지’ 사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수 사건에서는 집의 상태를 설명했고, 이번에는 내가 알고 있던 과거 사실을 계약 결정 전에 먼저 꺼냈다.

나는 지금도 같은 상황이면 계약금보다 먼저 말할 것 같다

그 손님은 결국 처음 방을 계약하지 않았다.

내 입장에서는 마음에 들어 하던 매물 하나를 스스로 내려놓은 셈이었다.

하지만 다른 방으로 계약은 이어졌다.

그 결과 때문에 내 판단이 옳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처음 방을 포기하고 아무 계약도 하지 않았더라도 내가 해야 할 고민은 같았을 것이다.

중개사는 계약을 만들어야 돈을 번다.

그래서 계약 직전에는 말 한마디가 더 어렵다.

그런데 이번 일에서 내가 가장 오래 기억하는 순간은 계약서를 쓴 순간이 아니다.

계약금을 넣겠다는 말을 들은 뒤 잠깐 멈췄던 순간이다.

손님이 앞으로 살 방이라면, 내가 알고 있는 이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그때 그렇게 판단했고 결국 말했다.

부동산 노트

부산에서 일하는 7년 차 공인중개사입니다. 임대차 계약과 보증금 상담을 주로 하며 네이버 지식iN과 엑스퍼트에서도 답변합니다. 계약 전에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를 현장 경험에 맞춰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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