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 사실을 알면서도 안 말하는 부동산이 있다. 나는 말했다. 그날 손님은 방을 보고 나서 계약금을 넣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정말 많이 했다. 건물에 하자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입 다물고 계약서를 쓰면 그걸로 끝나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 방에서 노인 한 분이 돌아가셨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 내용을 아는 사람은 몇 없을 거다. 건물주랑, 그때 구급차 오는 걸 본 사람들 말고는. 이런 얘기를 해도 되나 싶었다. 그런데 그 손님은 앞으로 그 방에서 몇 년을 살 사람이었다.
부동산 중개사가 말 못 한다는 것, 나는 말했다
한 동네에서 몇 년을 하면 그 동네 매물을 거의 다 알기 마련이다. 모든 부동산이 다 아는 건 아니지만, 애살 있고 돈 진짜 많이 벌고 싶은 중개사들은 그 동네 방을 정말 다 안다. 매물 정리도 다 되어 있고, 언제 나올 것인지, 여자들이 많은 곳, 동물 키워도 되는 곳, 주차 여유 많은 곳, 임대인 스타일, 전세 잘 받아주는 곳, 방이 잘 나오지 않는 곳까지 다 안다.
그날은 여자 손님이 왔다. 부모님이랑 같이 왔고, 내가 올린 광고를 보고 온 거였다. 월세가 가성비냐를 따지는 손님이 아니었다. 보안이랑 치안을 아주 따졌다. 좁은 도로 말고 좀 넓은 도로이고, 밤에도 밝고, 교통도 가깝고, 주차도 가능한 곳을 찾더라. 나한테는 사실 쉬웠다. 여성에 부모님 동행에 주차, 교통, 치안이면 딱 떠오르는 매물이 바로 나온다. 아마 다른 부동산도 마찬가지일 거다.
그 방은 바로 보여줬다. 보여준 이유는 혹시라도 다른 부동산에 갈 수도 있으니 설명은 해야겠다 싶어서였다. 이런 손님은 열 개 넘게 보여줘도 된다. 어차피 할 거라는 나의 감이 있으니까. 그런데 딱 맞는 그 매물이 바로 그 방이었다. 그래서 양심상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정말 많이 했다.
이 동네에 있는 부동산이라면 거의 다 알 거다. 부동산 소문은 정말 순식간에 퍼진다. 계약하면 땡이기 때문에, 건물에 하자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런 내용을 굳이 말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 나 같은 경우에는 그런 거라도 말하는 게 내 성격이다. 그래서 말했다.
다른 부동산 압박 문자, 손님은 나한테 보여줬다
말하니까 순간 고민을 엄청 하더라. 그 방이 완전히 마음에 들었는데, 내용을 듣고서는 소름이 조금 돋았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2차 대안으로 다른 방들을 보여줬다. 조건이 완전히 같지는 않아도 큰 도로 쪽이고 밤에 어둡지 않은 곳들로 다시 추렸다.
그러면서 손님이 나한테 뭘 보여줬다. 나한테 오기 전에 다른 부동산에서 이 방이랑 똑같은 사진을 보내주면서, 이거 보시면 바로 계약하실 거라 믿는다는 문자를 보냈다는 거다. 그 문자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같은 방이다. 같은 사진이다. 그런데 그 문자 어디에도 내가 방금 한 얘기는 없었다.
그리고 나랑 이야기하는 도중에도 계속 문자가 왔다. 방금 보여준 그 방을 다른 부동산에서 계약할 것 같다고. 부동산에서 흔히 쓰는, 뭐랄까 마음 급하게 만들기다. 시간이 촉박하다는 식으로 계속 밀어붙이는 거다.
그런데 손님은 이미 내 이야기를 들은 뒤였다. 부모님이랑 상의를 하더니, 그 얘기를 듣고는 도저히 마음이 안 들어선다고 했다. 그리고 나보고 고맙다고 했다. 계약하면 그만이기는 한데 알려줘서 고맙다고. 믿고 하고 싶다고, 다른 방이라도 괜찮다고 했다.
옆방에 누가 사는지, 1년 전 내가 계약한 대학원생
결국 다른 방으로 했다. 월세가 몇만원 더 비싼 방이었다. 이 손님은 역시 돈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큰 도로에 있고, 저녁에도 밝고, 주차가 되는지, 그리고 그 방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해줄 수 있는지. 그런 걸 원하는 손님이었다.
그리고 하나 더 물어봤다. 옆방에 누가 사는지 확인해줄 수 있냐고. 나 같은 경우에는 충분히, 오지랖이 넓을 정도로 손님이랑 얘기를 많이 한다. 내가 잘 알고 계약도 많이 해본 방이면 임대인 스타일이며 그 원룸 건물에 누가 사는지까지 훤히 아는 게 잘하는 중개사다. 그 옆집은 내가 1년쯤 전에 계약해준 여자 대학원생이었다. 그 학생도 똑같이 부모님이랑 같이 와서 방을 구했다고 알려줬다.
그거 듣고는 모르는 게 없다면서, 진짜 여기 부동산 오길 잘했다고 하더라. 내 부동산에 오기 전에는 딸이 여기저기 부동산 전화만 받다가, 그냥 그 동네 가서 부동산 고르자 하는 마음으로 왔다고 했다. 그런데 이렇게 잘 알고 마음 써주고 거의 다 알려주는 것 같아서 온 보람이 있다고 했다.
그러고는 아버지가 5만원짜리 하나를 주시면서 저녁에 맛있는 거 먹으라고 하셨다. 나는 그 돈을 주시자 그냥 거절 없이, 정말 감사하게 잘 받겠다고 했다.
거절하는 게 예의인 것 같기도 한데 그날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내가 한 말이 헛말이 아니었다는 걸 그 5만원이 대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 손님도 언젠가는 내가 계약해준 손님 중 하나가 된다. 다음에 누가 와서 옆방에 누가 사냐고 물으면, 나는 또 이렇게 대답할 수 있을 거다. 작년에 부모님이랑 같이 와서 방을 구한 분이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