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중개를 하다 보면 처음 보는 사람과 단둘이 빈방에 들어가는 일이 하루에도 몇 번씩 생긴다.
문을 열고 방을 보여주고, 화장실도 보고, 수납장도 확인한다.
중개사에게는 익숙한 일이지만 손님 입장에서는 처음 만난 사람과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가는 일이다.
나도 처음에는 그걸 크게 의식하지 않았다.
그런데 일을 하다 보니 생각이 바뀌었다.
무슨 문제가 실제로 생겨서가 아니라, 굳이 서로 오해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여성 손님이 혼자 방을 보러 오면 내가 먼저 거리를 두는 방식으로 안내하고 있다.
여성 손님 혼자 오면 차는 뒷좌석에 태운다
차를 타고 여러 매물을 같이 이동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 여성 손님이 혼자 왔다면 나는 앞좌석보다 뒷좌석에 타도록 안내하는 편이다.
굳이 처음 보는 사람끼리 바로 옆자리에 붙어 앉아 이동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서다.
손님도 자기 공간을 조금 더 확보할 수 있고 나도 운전에 집중하면 된다.
차 안에서는 블랙박스도 항상 켜둔다.
누구를 의심해서 켜두는 것은 아니다.
원래 차량에 있는 장치를 굳이 꺼둘 이유가 없고, 서로 처음 만난 상황에서는 이동 과정이 자연스럽게 남아 있는 편이 나에게도 손님에게도 낫다고 생각한다.
내 입장에서는 아주 작은 행동이다.
그런데 이런 작은 거리 하나가 처음 만난 손님에게는 생각보다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빈방에 들어갈 때도 내가 먼저 너무 가까이 붙지 않는다
원룸이나 오피스텔 빈방을 보여줄 때는 더 그렇다.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방은 말 그대로 아무도 없다.
손님과 중개사 둘만 안으로 들어간다.
나는 가능하면 손님이 방을 편하게 둘러볼 수 있도록 공간을 준다.
내가 계속 바로 옆에 붙어서 따라다니지 않는다.
현관, 복도처럼 CCTV가 설치돼 있는 곳도 자연스럽게 의식하면서 움직인다.
이것도 누군가를 감시하기 위한 행동은 아니다.
중개사인 내가 먼저 “나는 필요한 만큼만 안내하겠습니다”라는 거리를 만들어두는 것이다.
방 구조를 설명할 일이 있으면 설명하고, 손님이 직접 살펴봐야 하는 시간에는 조금 떨어져 있는 편이 오히려 편했다.
처음에는 나를 위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이런 식으로 바꿀 때 처음 생각했던 것은 내 입장도 컸다.
중개업은 동네에서 계속 장사를 해야 하는 일이다.
좋은 평판 하나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이상한 오해나 소문이 생기면 영업하는 사람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실제 문제가 생긴 뒤 해명하는 것보다 애초에 오해할 만한 장면을 줄이는 쪽을 택했다.
차에서는 거리를 둔다.
블랙박스는 켜둔다.
빈방에서도 손님에게 필요한 공간을 준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중에 한 손님에게 예상하지 못한 말을 들었다.
계약 자리에서 손님이 “편했다”고 했다
혼자 방을 보러 왔던 여성 손님과 결국 계약을 진행하게 된 적이 있었다.
계약 자리에서 이야기를 하다가 손님이 방을 안내받는 동안 “편했다”는 취지로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조금 의외였다.
나는 그동안 이런 행동을 주로 중개사인 내 입장에서 생각하고 있었다.
혹시라도 오해가 생기지 않게 하려고.
나중에 서로 기억이 달라질 만한 상황을 줄이려고.
그런데 손님 입장에서도 처음 보는 남자 중개사가 너무 가까이 붙지 않고 스스로 거리를 두는 것이 편하게 느껴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이걸 단순히 나를 보호하기 위한 행동이라고만 생각하지 않게 됐다.
여성 손님이라서 의심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 글에서 한 가지는 분명하게 하고 싶다.
여성 손님이 문제를 만들 수 있어서 조심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반대로 남성 중개사는 위험할 수 있으니 여성 손님이 조심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대부분의 손님과 중개사는 아무 문제 없이 방을 보고 계약한다.
다만 부동산 중개라는 일이 처음 보는 사람들이 차를 함께 타고, 비어 있는 집에 함께 들어가고, 때로는 늦은 시간까지 현장을 돌아다니는 업무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면 어느 한쪽이 상대를 믿으라고 요구하기보다 처음부터 불필요하게 애매한 상황을 만들지 않는 방식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내가 바꾼 것은 큰 규칙이 아니었다
무슨 거창한 매뉴얼을 만든 것은 아니다.
여성 손님이 혼자 왔을 때 내가 실제로 바꾼 건 아주 작은 행동들이다.
차에서는 뒷좌석에 안내한다.
블랙박스는 켜둔다.
빈방에서는 불필요하게 가까이 붙지 않는다.
가능하면 CCTV가 있는 공용 동선도 의식한다.
이 정도다.
그런데 부동산 일을 계속 해보니 신뢰라는 것도 꼭 말을 많이 해서 만드는 것은 아니었다.
“저 믿으셔도 됩니다”라고 말하는 것보다 행동으로 먼저 경계를 보여주는 편이 오히려 편할 때가 있었다.
중개사도 먼저 손님이 편할 환경을 만들 수 있었다
예전에는 방을 잘 골라주고 계약서만 정확하게 쓰면 중개를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손님은 계약서 쓰는 순간만 부동산을 보는 것이 아니다.
처음 차를 타고 이동할 때부터 방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까지 계속 중개사를 보고 있다.
나 역시 손님을 처음 만난다.
그래서 지금은 누가 누구를 믿어야 한다는 쪽보다 처음부터 서로 편하게 움직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계약 자리에서 그 손님이 했던 “편했다”는 말이 오래 남은 이유도 그것이다.
나는 나를 위해 거리를 둔다고 생각했는데, 그 거리가 손님에게도 편한 거리일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