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5일을 벌어다 준 거라고 생각했는데. 손님은 15일을 손해본 거라고 생각했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말을 듣고 있는데 서로 다른 계산을 하고 있었다. 부산 강서구에 사는 지인이 나한테 부탁을 해왔다. 내 공인중개사 합격생 동기인데, 그 조카가 남구에 월세방을 구한다고 했다. 신입생이었다. 목적은 아마 복비 때문이었을 거다. 그렇게 시작된 계약이었다.
지인 중개, 나는 15일 벌어줬는데 손님은 15일 손해
계약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었다. 수월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많이 따지시더라. 나는 살짝 부담스럽기도 하고, 내 동기의 부탁이기도 하고, 그런데 임차인 수수료는 받을 수 없을 것 같고, 참 기분이 묘했다.
집주인이랑 15일 뒤에 계약기간을 시작하는 걸로 협의를 봤다. 그러고 나서 손님한테도 내용을 충분히 설명했다. 원래 보신 이 방은 오늘 내일 나가도 이상한 방이 아니라고. 그냥 말로만 하면 안 믿을 것 같아서 그 방의 과거 계약 이력을 쭉 보여주면서 설명했다. 실제로 그 방이 그동안 얼마나 빨리빨리 나갔는지를 눈으로 보여준 거다.
그런데 살짝 아까워하는 눈빛이었다. 나는 15일을 벌어다 준 거라 생각하는데, 손님은 15일을 손해본다고 생각한다. 그 표정을 보는데 여러 생각이 들었다. 이 계약에서 임차인 중개수수료는 안 받을 거라고 이미 마음을 먹고 있었다. 어차피 다른 손님은 매일매일 오고, 그 손님들한테는 양쪽 다 받을 수 있는데, 지인 조카라는 이유로 이렇게 손해 보는 마음이 들었다.
하루 13개 방, 그 사이 다른 손님은 없었다
그날 방을 몇 개 봤나. 하루에 13개 정도 봤던 것 같다. 진짜 베스트 방부터 가성비 방, 좋은 방, 다 봤다. 그런데 문제는 입주 시기였다. 거의 한 달 뒤 입주인데, 그날 방을 보면서 계약금도 아직 안 넣은 상태였다.
한 달 뒤 입주면 어느 집주인이건 받아주질 않는다. 신입생 방 구하는 시즌인데 한 달을 공실로 두면 임대인 입장에서는 그냥 손해다. 그 시즌엔 방이 계속 나가니까 굳이 기다릴 이유가 없다. 그래서 집주인 설득시키는 데도 제법 걸렸다. 그리고 손님한테도 설명했다. 한 달 뒤에 입주한다고 하면 집주인 입장에서는 그 한 달이 통째로 공실이 되어버린다고. 조율하는 것도 힘들었다.
그래서 협의를 했다. 집주인한테 15일 뒤에 계약기간 시작하는 걸로 하자고 말했다. 지인이라고도 말했다. 임차인이 문제 생기면 나한테 바로 연락 달라고 했다. 그 임대인은 내가 과거에 계약을 많이 해줬던 부동산이니까 이렇게 서비스 차원으로 해준 거다. 그러니까 이건 방이 좋아서 된 게 아니라, 그동안 쌓아놓은 걸로 된 거다.
그리고 방 13개를 안내한다는 게 어떤 건지 말하자면, 한 방당 이동 시간까지 하면 10분 정도 걸린다. 이렇게 저렇게 하면 시간이 제법 많이 걸린다. 그동안 다른 손님 안내도 안 된다. 그날 하루는 그냥 통째로 그 계약에 들어간 셈이다. 그리고 그 방 월세 기준으로 복비가 한 15만원 정도였다. 임대인 수수료는 받았다. 임차인 복비 15만원은 포기했다.
동기한테 말 못하고, 기프티콘에 마음이 풀렸다
동기한테 힘들었다는 말은 못 했다.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그래도 스타벅스 커피 사 먹을 수 있는 기프티콘을 주더라. 그래서일까, 마음이 조금 풀렸다. 내가 너무 속이 좁았나 싶기도 했다. 이왕 도와주는 거 그냥 좋은 마음으로 도와줄걸 그랬나 싶었다.
지인한테 부동산 부탁 받은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몇 번 있었다. 다른 지인한테도 그렇고 내 친구들한테도 몇 번이고 임차인 수수료 안 받고 도와준 적이 많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렇게 지인 부동산 중개가 은근히 신경이 많이 쓰였던 건 사실이다.
왜 그런가 하면, 정말 만에 하나 중개사고가 나거나, 보증금이나 전세금을 나중에 못 돌려받는다거나, 중간에 살고 있는데 집에 하자나 문제가 생긴다거나, 집주인과 다툼이 생긴다거나. 그럴 때 중간에서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늘 고민을 하는 거다. 모르는 손님이면 일로 처리하면 되는데, 지인은 그게 안 된다. 일이 관계까지 끌고 들어온다.
그래서 이번에도 최대한 나랑 소통도 잘되는 임대인의 원룸, 내가 잘 아는 방, 내가 많이 계약해본 방 위주로 골랐다. 지인 중개라서 최악의 상황까지 다 고려해놓고 들어간 거다. 다행히 지인 중개로 문제가 생긴 적은 없다. 엄청 꼼꼼하게 했으니까. 그리고 내가 짬밥이 있으니까 최악의 상황까지 고려해서 중개하고 준비하기 때문이다.
백프로 완벽이라는 건 부동산 중개에서 없다. 그래도 신경이 배로 쓰이는 건 맞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지인 부탁이 오면 나는 또 받을 거다. 대신 그날 하루는 다른 일정을 아예 비워두고, 내가 제일 잘 아는 방부터 보여줄 생각이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인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