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후기, 3년 만에 전화가 왔다. 왜 더 말리지 않았냐고

그로부터 3년 뒤,뒷번호가 낯익은 전화가 울렸다. 저장은 안 되어 있는데 뒷자리 네 개가 눈에 딱 걸렸다. 받기도 전에 뭔가 일이 일어난 느낌이 들었다. 3년 전에 내가 전세를 중개해 드린 손님 번호였다. 그 계약은 지금도 생생하다. 계약금 넣기 전에 내가 먼저 하지 마시라고 잘랐던 계약이었으니까. 그런데 3년 만의 첫 통화가 항의일 줄은 몰랐다.

전세계약서와 집 열쇠가 놓인 책상 위로 3년 만에 임차인의 항의 전화가 걸려온 전세보증금 미반환 사건


전세 중개 3년 뒤, 낯익은 뒷번호

받았더니 대뜸 일 터졌다고 한다. 자기를 기억하냐고, 그때 그 어머니 딸이라고 한다. 이름을 듣기도 전에 목소리에서 먼저 알아봤다.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때 노이로제 걸렸던 기억이 그대로 되살아났다.

3년 전 그 계약은 하루 종일 붙잡혀 있던 계약이었다. 60대 어머님이 전세를 구하러 오셨고, 대출도 안 받아도 된다고 하셨다. 우리 부동산 입장에서 이런 손님은 정말 쉽고 편하다. 대출 안 받아도 되지, 임대인도 대출 되니 마니로 시간 안 끌어도 되지. 그런데 이 건은 그렇게 안 흘러갔다.

내 구역에 매물이 없어서 부산 시청 근처 부동산 소장님이랑 공동중개로 진행한 건이었다. 계약금 넣기 전까지 다른 업무를 못 볼 정도였다. 방 보고, 부동산에서 설명 듣고, 또 묻고, 또 설명하고. 그렇게 하루를 통째로 쓴 손님이었다. 그 전화 한 통에 그 하루가 다 돌아왔다.

왜 더 말 안 했냐고, 3년만의 첫 통화

다짜고짜 밀어붙였다. 그때 자기가 그렇게 찝찝하다고 했는데 왜 더 세게 안 말렸냐고. 3년 만의 첫 통화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게다가 중개수수료도 받아냈으니까 당연히 책임을 지어야 되는 거 아니냐고, 온갖 내용을 다 퍼부었다.

내용을 정리해서 들어보니 이랬다. 2년 전세를 살고, 묵시적갱신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1년을 더 연장해서 살았단다. 만기 전에 집주인한테 나간다고 말했고, 녹음도 하고 문자도 남겨서 서로 합의된 날짜까지 잡았단다. 그런데 그날이 돼도 주인이 돈을 못 준단다. 돈도 없고 새로운 세입자도 못 구했다고.

그 말을 듣는데 3년 전 그 자리가 떠올랐다. 그때 집은 비어 있었고, 등기상 소유자는 안 바뀌었는데 곧 바뀐다고 했다. 전세 세입자가 구해지면 그 돈으로 잔금을 치겠다는 구조였다. 매매금액이 1억6천에서 1억7천쯤이었으니까, 본인 돈 1~2천으로 집을 사는 셈이었다. 실무에서 그럴 수는 있다. 그런데 손님과 딸은 오만 상상을 다 했다. 문제 생기면 어쩌냐부터 소유권이 어쩌고 등기가 어쩌고, 전세권설정이며 보증보험이며. 딸은 부동산 공부를 참 많이 한 사람이었다. 계약 자리에는 사위까지 연차를 내고 왔는데, 그 사람도 공인중개사 1차는 붙어본 사람이라고 했다.

나도 너무 힘들어서, 계약금 넣기 전에 딱 잘라 말했다. 정말 죄송한데 그렇게 걱정되시면 차라리 월세를 구하시라고. 왠만하면 내 구역에서는 끝까지 케어를 해드리는데, 정말로 손님 말대로 문제 생기면 대응이 안 될 것 같아서 못 하겠다고 잘라서 말했다. 그런데도 그날 계약금이 들어갔고, 며칠 뒤 본계약을 했다. 그 자리에서 바뀐 남자 임대인이 답답했는지 그러더라. 문제 생기면 경찰서에 신고도 하고 경매도 넣으면 된다고, 지금이라도 계약금 돌려줄 테니까 안 하고 싶으면 안 해도 된다고. 보러 오는 사람 많다고. 그런데도 결국 도장을 찍고 잔금을 치렀다.

전화 안 받고 싶었는데, 수수료 받은 내 손님

솔직히 말하면 정말, 정말 전화 안 받고 싶었다. 받는 순간 또 몇 시간 에너지가 다 털릴 걸 알았으니까. 3년 전에 이미 하루를 다 썼던 사람이다.

그래도 받았다. 뭐가 되었든 내 손님이었으니까. 그래, 수수료 받았잖아. 어디까지 내가 케어해야 되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법적으로 따지면 나한테 책임은 없다. 고의도 없었고 실수도 없었다. 할 수 있는 건 그 당시에 다 했고, 오죽했으면 월세를 찾아보시라고까지 했겠나. 그런데 책임이 없다는 말로 전화를 끊고 싶지는 않았다.

일단 진정하시고 차근차근 내용을 정리해보자고 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걸 하나씩 짚어줬다. 내용증명 보내라고 했다. 혹시 모르니까 경찰서에도 접수하라고 했고, 주민센터도 방문하라고 했다. 그리고 그 임대인이 의뢰했던 부동산에 다시 찾아가서 자초지종을 말해보라고 했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놓으라고 했다. 지금 당장 돈이 나오는 건 아니어도, 나중에 필요한 게 그런 기록들이니까.

전세금 1억5천, 지금도 못 돌려받고 있다

그 손님 전세금이 1억5천만원이었다. 대출 하나 없이 본인 현금 전액이었다. 60대 어머님 돈이다. 그래서 딸이 그렇게까지 캐물었던 거고, 나도 그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었다.

지금도 못 돌려받고 있다. 법무사 통해서 소송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계속 세입자를 구하고 있다고 한다. 하루하루가 지옥 같다고 하더라.

3년 전 그 자리에서 오간 말들을 다시 생각해보면, 그때 그 걱정들이 결국 다 맞았다. 소유권이 어쩌고 등기가 어쩌고 하면서 딸이 물어봤던 게 틀린 게 아니었다. 새 임대인이 세입자 돈으로 잔금을 치는 구조도, 자기 돈 1~2천으로 집을 산 것도 다 사실 그대로였다. 다 알고 계약했고, 다 알고 3년을 살았고, 결국 그 지점에서 터졌다.

3년 전에 내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이거였다. 전세로 사는데 전세금이 어떻게 될까 봐 두려우면 전세 사는 게 너무 힘들 수 있다고. 보통 2년은 살 텐데 하루하루 그 생각으로 어떻게 사시겠냐고. 차라리 돈이 좀 들더라도 월세로 사는 게 마음 편하다고. 그랬더니 돈이 너무 아깝다더라, 월세가.

그 말을 3년 만에 다시 떠올렸다. 손님들아,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하지 마라. 찝찝하면 하지 마라. 나는 다음에 또 이런 손님이 오면 그때처럼 말할 거다. 걱정되시면 월세 구하시라고.

부동산 노트

부산에서 일하는 7년 차 공인중개사입니다. 임대차 계약과 보증금 상담을 주로 하며 네이버 지식iN과 엑스퍼트에서도 답변합니다. 계약 전에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를 현장 경험에 맞춰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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