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약을 한 지 1년 정도 지났을 때였다.
손님 집 우편함에 법원 경매 관련 서류가 들어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임차인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다.
목소리부터 다급했다.
계약할 때 그렇게까지 확인했는데 어떻게 집이 경매로 넘어갈 수 있느냐고 했다.
그러더니 내가 계약할 때 건네준 공제증서를 이야기했다.
“공제증서 1억원 있잖아요. 이런 사고 나면 거기서 책임지는 거 아닙니까?”
아버지는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실제로 부동산을 운영하는 개업공인중개사는 아니었지만, 자격증까지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말하니 나도 순간 머리가 복잡해졌다.
당시 내가 실제 가입해 있던 공제증서에는 1억원이라는 금액이 적혀 있었다.
그런데 그 1억원을 손님이 생각하는 방식과 내가 이해하고 있던 방식에는 차이가 있었다.
계약서 검토만 한 시간 가까이 걸렸던 전세였다
이 계약은 대충 진행한 계약이 아니었다.
특히 손님 아버지가 계약 내용을 상당히 꼼꼼하게 확인했다.
계약서 문장 하나를 작성하면 다시 확인했고, 궁금한 내용이 생기면 관련 서류를 다시 보여달라고 했다.
계약서를 검토하는 데만 한 시간 가까이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특약에는 전세대출이 나오지 않으면 계약금을 반환한다는 내용도 넣었고, 집에 하자가 생겼을 때 임대인이 처리한다는 내용도 협의해서 적었다.
특약을 적었다고 끝내지도 않았다.
임대인에게 전화해서 내용을 직접 읽어주고 정말 동의하는 것이 맞는지 다시 확인했다.
손님 아버지도 옆에서 그 과정을 지켜봤다.
나는 손님이 요구한다고 무조건 계약서에 집어넣은 것도 아니었다.
손님이 원하는 내용과 임대인이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을 계속 맞춰가면서 작성했다.
나중에 서로 다른 말을 하지 않도록 설명하고 협의한 내용도 문자로 남겨뒀다.
등기 열람 700원, 아마 7,000원어치는 썼다
등기사항도 몇 번을 확인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당시 인터넷으로 한 번 열람할 때 700원이었는데, 아마 7,000원어치는 쓴 것 같다.
계약을 진행하면서 그만큼 여러 번 확인했다는 이야기다.
건축물대장도 봤고, 임대인의 정보와 등기에 나오는 권리관계도 확인했다.
등기에 잡혀 있던 대출 내용도 손님에게 설명했다.
계약 전에 보고, 계약서를 작성하면서 다시 보고, 잔금을 치를 때도 달라진 내용이 없는지 확인했다.
손님 아버지가 같은 내용을 다시 물어봐도 그냥 전에 말씀드렸다고 넘어가지 않았다.
다시 서류를 확인해서 보여줬다.
그렇다고 내가 이 집은 무조건 안전하다고 말한 것도 아니었다.
내가 확인할 수 있었던 자료와 그 자료에 적힌 내용을 설명했다.
잔금까지 정상적으로 끝났고 입주도 마쳤다.
그렇게 계약은 끝난 줄 알았다.
그로부터 약 1년 뒤 경매개시결정이 올라왔다.
전화 끊고 가장 먼저 1년 전 계약자료부터 꺼냈다
전화를 받고 등기부터 다시 확인했다.
실제로 경매개시결정이 올라와 있었다.
임대인에게도 계속 연락했다.
나중에 연락이 닿았을 때 임대인은 담보대출 이자를 감당하지 못했다고 했다.
건물을 매각해서 임차인들의 전세금을 갚으려고 한다는 이야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임차인 입장에서 당장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답은 아니었다.
나도 긴장됐다.
그때 가장 먼저 한 일은 공제증서의 1억원을 쳐다보는 게 아니었다.
1년 전 계약자료를 전부 다시 꺼냈다.
등기를 확인했던 시점, 건축물대장, 대출 내용, 특약을 협의한 문자, 잔금 전후에 주고받은 내용까지 다시 봤다.
내가 확인하지 않은 것이 있었는지, 설명해야 할 내용을 빼먹은 것이 있었는지부터 확인했다.
특히 다시 확인한 것은 내가 이 집을 완전히 안전한 전세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는지였다.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확인 가능한 권리관계를 보여줬고 손님 측에서 요구했던 내용은 임대인에게 다시 확인해서 계약서에 넣었다.
그 과정이 문자와 계약자료에 남아 있었다.
공제증서 1억원이 보증금 반환보험은 아니었다
손님 아버지는 당시 공제증서에 적힌 1억원으로 손해를 해결하면 되는 것처럼 이야기했다.
나도 실제 중개사고를 직접 겪어 공제금 청구 과정을 경험해본 적은 없었기 때문에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협회 쪽에도 내가 가지고 있던 자료와 계약 경위를 설명하면서 문의했다.
그 과정에서 다시 분명하게 확인한 것이 있었다.
공제증서에 적힌 금액은 임차인의 전세보증금을 대신 반환해주는 돈이 아니었다.
공인중개사법상 개업공인중개사가 중개행위를 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거래당사자에게 재산상 손해를 발생시켰을 때 손해배상책임이 문제가 되고, 공제는 그 책임을 보장하기 위한 장치다.
그러니까 집에 경매가 시작됐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공제증서에 적힌 금액이 바로 지급되는 구조는 아니었다.
현재 공식자료로 다시 확인해보면
현재 법인이 아닌 개업공인중개사의 손해배상책임 보장금액은 2억원 이상이고, 법인인 개업공인중개사는 4억원 이상이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는 공제가입기간 중 발생한 중개사고에 대한 손해배상액 총합이 공제가입금액 한도 안에서 보상되며, 재산상 손해 중 공제가입자의 과실비율에 해당하는 범위를 보상한다고 안내하고 있다.
공제금 청구 역시 증서만 제출하면 자동으로 지급되는 방식은 아니었다.
현재 한국공인중개사협회 안내를 보면 손해배상합의서, 화해조서, 확정판결문 등 책임과 손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자료를 갖춰 청구하는 절차가 있고, 청구 방식에 따라 심사나 소송을 통해 지급 여부가 결정된다.
당시 협회에 문의해서 들었던 설명도 내가 가지고 있던 계약자료만 놓고 바로 내 고의나 과실이 있다고 단정할 상황은 아니라는 취지였다.
물론 협회에 문의해서 받은 답변이 법원의 확정적인 책임 판단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 역시 손님에게 무조건 책임이 없다고 큰소리친 것도 아니고, 반대로 당황해서 내가 책임지겠다고 인정한 것도 아니었다.
계약자료부터 다시 확인하고 상황을 알아보겠다고 했다.
내용증명도 없었고 소송으로도 가지 않았다
손님 아버지는 처음에는 나에게 상당히 강하게 항의했다.
본인 가족의 전세보증금이 걸려 있으니 그 마음 자체는 이해할 수 있었다.
나 역시 연락을 피하지 않았다.
등기를 다시 확인했고 임대인에게 계속 연락했고, 내가 가지고 있던 계약자료도 다시 살펴봤다.
공제증서가 어떤 경우에 작동하는 것인지도 확인해서 설명했다.
하지만 그 뒤에 내용증명이 온 것은 아니었다.
나를 상대로 공제금을 청구한 것도 아니었다.
소송으로 이어진 것도 아니었다.
항의는 거기서 끝났다.
임차인이 나중에 전세보증금을 정확히 얼마까지 돌려받았는지는 나도 알지 못한다.
내가 모르는 결과를 잘 해결됐다고 적고 싶지도 않다.
1억원이라는 숫자보다 다시 보게 된 것은 계약 당시 기록이었다
이 일을 겪고 나서 공제증서를 다시 보게 됐다.
처음 전화가 왔을 때는 나도 증서에 적힌 1억원이라는 숫자부터 떠올랐다.
그런데 막상 책임 이야기가 나오자 내가 가장 오래 들여다본 것은 공제증서가 아니었다.
1년 전에 열어봤던 등기와 건축물대장, 계약서와 확인·설명서, 특약을 협의했던 문자였다.
사고가 났다고 기록이 중개사의 책임을 없애주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기록이 없다고 무조건 책임이 생긴다는 의미도 아니다.
다만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내가 그 계약에서 무엇을 확인했고 무엇을 설명했는지를 다시 보여줄 수 있는 건 결국 당시 남아 있는 자료였다.
나는 그날 그 차이를 제대로 느꼈다.
공제증서에는 1억원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하지만 1년 뒤 내가 가장 먼저 다시 꺼낸 것은 그 증서가 아니라 계약 당시 남겨둔 기록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