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중개 하자 고지, 5억 전세에 누수 숨겨달라는 집주인을 설득한 이야기

비가 엄청 많이 올 때 붙박이장 뒤쪽 벽을 타고 바닥으로 물이 보였어요.

2017년 겨울, 해운대구에 있는 고가 아파트 전세를 중개할 때였다. 전세금은 5억이었고 손님은 계약금까지 준비해 둔 상태였다.

그런데 집주인은 예전에 있었던 안방 붙박이장 뒤쪽 누수 이야기를 세입자에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냥 계약을 진행하면 빨리 끝날 일이었지만 나는 그렇게 못 하겠더라. 이미 알고 있는 일을 모른 척하고 계약서를 쓰는 게 계속 마음에 걸렸다.

결국 계약금을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하고 집주인과 2~3일을 더 이야기했다.

2017년 해운대구 5억 전세 아파트 누수 하자 고지와 집주인 설득 사례

5억 전세, 집주인이 누수 숨겨달라고 했다

그 집은 내가 예전부터 알고 있던 집이었다. 안방에 붙박이장이 있었는데 집주인이 예전에 나한테 한 번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비가 정말 많이 왔던 날 붙박이장 뒤쪽에서 벽을 타고 내려온 물이 바닥 쪽으로 보였다는 내용이었다. 계속 물이 새는 집도 아니었고 내가 다시 집을 봤을 때 바로 눈에 보이는 흔적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오히려 더 애매했다.

집주인은 이번에 전세를 놓으면서 그 이야기를 굳이 세입자에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그때 가서 처리해주면 된다는 입장이었다.

집주인 입장도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누수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가 잘 진행되던 계약이 깨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거다. 그것도 전세금 5억짜리 계약이었다.

알고 있으면서 말을 안 하는 건 달랐다

그런데 나는 이미 내용을 알고 있었다. 내가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면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그때 처음 알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알고 있으면서 말을 안 하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라고 생각했다. 중개사 입장에서 양심에도 걸렸고,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내가 알고도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말을 듣는 상황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집주인한테 그대로 말했다. 이거 미리 알려주지 않고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정말 골때린다. 나는 이미 누수 이야기를 들었고 알고 있는데 아무 말도 안 하고 계약을 진행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물론 나도 계약이 깨지는 건 싫었다. 중개사니까 계약이 성사돼야 수수료도 생기고, 그동안 집을 보여주고 손님하고 연락하면서 움직였던 시간도 있다. 특히 이번 건은 금액도 컸다. 그래도 계약 하나 성사시키겠다고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중요한 내용을 덮고 넘어가는 게 더 찜찜했다.

계약금 기다리는 손님, 2~3일 집주인 설득

집주인도 사정이 있었다. 빨리 전세금을 받아서 주택담보대출을 갚고 이자를 줄여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세입자가 집을 마음에 들어 했을 때 바로 계약금을 받고 진행하고 싶어 했다. 마침 손님도 계약금을 준비했다고 연락이 왔다.

보통 이 정도까지 진행됐으면 중개사 입장에서는 빨리 계약서를 잡고 계약금을 넣는 쪽으로 움직이게 된다. 그런데 내가 손님한테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기다리는 동안 마음이 바뀌거나 다른 집을 볼 수도 있었지만, 계약을 서두르는 것보다 이 문제를 정리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한 2~3일 정도 집주인과 계속 이야기를 했다. 지금 당장 문제가 없으면 제일 좋지만, 예전에 물이 보였다는 사실을 집주인도 알고 나도 알고 있었다. 이걸 말하지 않고 계약했다가 같은 자리에 문제가 생기면 그때는 훨씬 복잡해진다고 했다.

차라리 계약하기 전에 말하고 세입자가 직접 판단하게 하는 게 맞다고 했다.

계약 전에 확인할 수 있었던 범위

문제는 붙박이장 뒤쪽이라는 것이었다. 확인한다고 붙박이장을 전부 뜯어낼 수도 없었다.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누수 탐지도 해보고 곰팡이 관련 테스트도 해봤다. 다행히 그때 확인했을 때는 특별한 문제가 나오지 않았다. 당장 물이 새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확인한 내용 당시 상황
예전에 있었던 일 비가 아주 많이 왔을 때 붙박이장 뒤쪽 벽을 타고 바닥으로 물이 보였음
계약 전 눈으로 본 상태 바로 눈에 보이는 흔적은 없었고 당장 물이 새고 있지도 않았음
누수·곰팡이 확인 할 수 있는 범위에서 확인했지만 특별한 문제는 나오지 않았음
확인의 한계 붙박이장을 전부 뜯을 수 없어 뒤쪽을 완전히 확인하기는 어려웠음

지금 눈에 보이는 문제도 없고 확인 결과도 괜찮았다. 집주인은 빨리 계약하기를 원했고 세입자는 계약금까지 준비해놨다. 그냥 계약을 진행하기에는 모든 조건이 거의 갖춰져 있었다.

그래도 나는 마음에 걸렸다. 중개 일을 하다 보면 이런 찜찜한 느낌이 있다. 계약서를 쓴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계약하고 나면 더 신경 쓰인다.

나중에 문제가 생겨서 전화가 오면 어떡하지, 세입자가 “소장님 이거 알고 있었어요?”라고 물으면 나는 뭐라고 해야 하지. 그런 생각이 계속 들었다.

결국 집주인한테 다시 이야기했다. 계약이 깨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건 먼저 말하는 게 맞다고 했다. 집주인도 계약을 놓칠까 봐 걱정했지만 결국 내 말을 받아들였고, 계약금을 받기 전에 세입자에게 이야기하기로 했다.

세입자한테 다 말했다, 반응이 의외였다

나는 계약금이 들어가기 전에 세입자에게 내가 알고 있던 내용을 그대로 이야기했다. 예전에 비가 아주 많이 왔을 때 안방 붙박이장 뒤쪽 벽을 타고 물이 바닥으로 내려온 적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지금 확인했을 때는 누수나 곰팡이 관련해서 특별한 문제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까지 설명했다.

솔직히 여기까지 말했을 때 나는 계약이 안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전세금 5억을 주고 들어가는 사람에게 누수라는 말은 기분 좋은 이야기가 아니고, 붙박이장 뒤쪽이라 안을 완전히 뜯지 않고서는 직접 확인하기도 어려웠다.

그런데 세입자의 반응은 생각보다 훨씬 수월했다. 정말 양반이었다. 본인이 직접 집을 확인했을 때는 누수 문제를 느끼지 못했고, 그 집의 입지나 낮은 층수, 기본 인테리어, 전세금액 같은 전체적인 조건이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세입자가 한 말도 간단했다.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그때 해결만 제대로 해달라.

그렇게 이야기를 다 듣고도 계약을 진행하겠다고 했다. 나는 2~3일 동안 집주인과 이야기하고 계약금을 준비한 손님에게 기다려 달라고까지 하면서 별생각을 다 했는데, 막상 사실대로 말하니까 세입자는 본인이 직접 판단하고 계약했다.

물론 모든 세입자가 이렇게 받아들이지는 않을 거다. 누수 이야기를 듣는 순간 계약을 안 하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면 어쩔 수 없다. 그 판단은 세입자가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내가 먼저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고 판단해서 이야기를 빼버리면 세입자는 선택할 기회조차 없어진다. 계약할지 말지는 세입자가 결정해야 할 일인데, 내가 중간에서 내용을 숨기는 순간 그 선택을 내가 대신해버리는 셈이다.

그리고 실제로 나중에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나는 이 계약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다행히 문제가 생기기 전에 내가 알고 있던 내용은 계약 전에 전부 설명해둔 상태였다. 만약 그때 집주인 말대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계약을 진행했다면 이후 상황은 지금과는 완전히 달랐을 거라고 생각한다.

확인·설명 의무를 다시 보게 된 이유

이 일을 겪고 나서 중개대상물의 상태를 계약 전에 확인하고 설명하는 일이 왜 중요한지 더 분명하게 느꼈다. 공인중개사법 제25조에도 개업공인중개사는 중개가 완성되기 전에 중개대상물의 상태와 입지, 권리관계 등을 확인해 중개의뢰인에게 성실하고 정확하게 설명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현재 사용하는 주거용 건축물 중개대상물 확인·설명서에도 벽면의 누수 여부와 위치를 확인하는 항목이 있다. 다만 실제 책임은 계약 내용과 고지 여부, 당시 확인할 수 있었던 상태 등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중개하다 보면 이런 고민이 한 번씩 생긴다. 특히 집주인이나 집에 대해 이것저것 알고 있다 보면 오히려 아는 게 고민이 된다. 어디까지 말해야 하나, 괜히 이야기했다가 계약이 깨지는 것 아닌가, 집주인이 왜 그런 얘기까지 하느냐고 하면 어떻게 하나. 중간에 있는 사람이다 보니 생각보다 고민할 일이 많다.

그래도 이 일을 겪고 나서 내 기준은 더 확실해졌다.

고민이 많을 때는 무조건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나는 앞으로도 내가 알고 있는 중요한 내용이라면 계약 하나 놓치는 게 아깝더라도 먼저 이야기할 생각이다. 계약은 다른 손님과 다시 할 수도 있지만, 알고도 말하지 않았다는 찜찜함은 오랫동안 남기 때문이다.

함께 읽어볼 실제 중개 경험

중개사가 먼저 알고 있던 사실을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하는지 고민했던 또 다른 경험은 방 안에서 사람이 사망한 사실을 먼저 알린 중개 사례에 적어두었다.

말로 들은 조건을 계약서에 정확히 남기는 문제는 오피스텔 주차 2대 약속 때문에 계약금을 돌려준 사례에서 이어진다.

부동산 노트

부산에서 일하는 7년 차 공인중개사입니다. 임대차 계약과 보증금 상담을 주로 하며 네이버 지식iN과 엑스퍼트에서도 답변합니다. 계약 전에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를 현장 경험에 맞춰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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