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가 3분의 1쯤 진행됐을 때 매수인에게 연락이 왔다. 3억원까지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대출이 2억5천만원만 나온다는 내용이었다. 5천만원이 한순간에 비었다. 그런데 이 집은 아직 매매 잔금도 치르기 전이었다. 매도인은 잔금일 한 달 전에 집을 비워줬고, 매수인은 그 빈집에 5천만원 가까운 인테리어를 시작한 상태였다. 부산의 5억원대 아파트였고 계약금만 5천만원이 들어가 있었다. 매도인은 반드시 팔아야 했고, 매수인은 반드시 들어와야 했다. 이미 공사판이 된 집 한가운데서 대출만 5천만원 줄어버렸다. 매수인은 당황했고 매도인은 난감해졌다. 나도 혹시 책임 이야기가 나올까 혼자 걱정했다.
공사 중에 대출 감액, 5천만원 구멍
잔금 전 인테리어 이야기는 매수인의 부탁에서 시작됐다. 인테리어 스케줄이 예상보다 앞당겨져 잔금 전에 공사부터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원칙대로라면 잔금과 소유권 이전을 끝낸 뒤 열쇠를 넘기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매도인에게도 사정이 있었다. 개인적인 이유로 집을 꼭 팔아야 했고, 어렵게 구한 매수예정자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다른 거처도 이미 마련돼 있어 한 달 먼저 집을 비우는 것은 가능했다.
매도인은 매수인의 부탁을 받아줬다. 별도의 각서를 또 쓰지는 않았고, 매매계약서 특약에 잔금 전에 인테리어를 먼저 하기로 한다는 내용을 넣었다. 당시에는 매도인과 매수인이 모두 동의했고 계약금도 5천만원이나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계약은 그대로 진행될 거라고 봤다. 나도 공사 일정만 잘 맞으면 매수인은 빨리 입주하고 매도인은 약속한 날 잔금을 받을 수 있으니 서로에게 나쁘지 않은 협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공사가 3분의 1쯤 진행된 시점에 전혀 다른 변수가 튀어나왔다. 매수인이 3억원 정도 받을 수 있다고 알고 있던 대출이 실제로는 2억5천만원만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공사 전 실측도 끝났고 집 안은 이미 손을 댄 상태였다. 대출이 줄었다고 공사 전의 빈집으로 되돌릴 수도 없었다.
추가로 필요한 돈은 정확히 5천만원이었다. 매수인은 부동산으로 연락해 어쩔 줄 몰라 했고, 이야기를 전해 들은 매도인도 난감해했다. 나는 그때 잔금 전 공사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공사 자체가 아니라, 잔금일까지 당연히 된다고 믿었던 숫자 하나가 바뀌는 것이라는 걸 봤다.
공증·각서까지 간 인테리어 잔금
처음에는 부족한 5천만원을 추가 대출로 메울 수 있는지 알아봤다. 신용대출로 돈을 더 받는 방법은 있었다. 하지만 금리가 너무 셌고, 매수인이 그 이자를 계속 감당하기는 어려웠다.
그렇다고 매매를 멈추기도 어려웠다. 매도인은 이미 다른 거처로 옮긴 상태였고 잔금을 받아야 했다. 매수인도 그 집에 들어오는 것을 전제로 기존 일정과 자금을 모두 움직여 놓았다. 계약금 5천만원과 진행 중인 인테리어 비용까지 한꺼번에 얽혀 있었다.
결국 매매 잔금부터 약속한 날 처리하기로 했다. 부족한 돈 때문에 매도인의 잔금을 미루는 대신, 인테리어 사장에게 공사대금 지급 시간을 조금 더 달라고 부탁했다. 매수인은 가족과 지인을 통해 5천만원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말로만 기다려달라고 할 수는 없었다. 인테리어 잔금을 몇 월 며칠까지 지급하고, 그 기간의 약정 금리는 5%로 한다는 내용을 각서에 적고 공증까지 했다.
그 자리에 매수인과 매도인, 인테리어 사장, 법무사가 함께 있었고 나도 참석했다. 솔직히 나는 그 자리에 끼고 싶지 않았다. 나는 부동산 계약을 중개한 사람이지, 매수인의 대출 가능 금액을 결정한 사람이 아니었다. 은행에서 얼마가 나올지 내가 승인할 수도 없고, 손님의 신용 상태를 대신 판단할 수도 없다.
그래도 대출과 잔금, 공사 이야기가 내 부동산 사무실에서 계속 오갔고, 처음부터 어떤 이야기가 있었는지 객관적으로 말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래서 증인처럼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내가 가장 걱정한 것은 누군가 갑자기 나를 보며 책임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이었다. 실제로는 아무도 내게 책임을 묻지 않았다. 매수인은 왜 대출이 줄었는지 당황해했고, 매도인은 이미 집을 비운 뒤라 잔금이 정상적으로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 인테리어 사장은 이미 공사를 진행했으니 대금 지급일을 분명하게 남겨야 했다.
그날 다섯 사람이 한자리에 있었던 이유는 서로를 몰아세우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이미 되돌리기 어려운 일을 어떻게 끝까지 마무리할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중개사가 직접 겪고 나서 바꾼 말
이 일을 겪기 전에도 잔금 전에 도배나 장판을 먼저 하고 싶다는 부탁은 종종 있었다. 매도인이 집을 비워줄 수 있고 매수인의 입주 일정이 급하면, 당사자끼리 합의해서 먼저 공사하는 경우가 실제로 있다.
계약서에 특약을 넣고 서로 동의하면 일정 문제는 해결된 것처럼 보인다. 나도 이번 계약에서 인테리어를 먼저 한다는 문구를 넣었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그 문구는 공사를 허락한다는 내용만 있었지, 대출이 줄어 잔금을 못 맞추거나 공사대금을 제때 지급하지 못할 때 어떻게 할지는 담고 있지 않았다.
부동산 계약에는 늘 변수가 있다. 대출 상담 때 들었던 금액이 그대로 나오지 않을 수도 있고, 공사 일정이 갑자기 당겨질 수도 있고, 이미 옮겨놓은 거처 때문에 매도인이 잔금일을 바꾸기 어려울 수도 있다.
각각만 놓고 보면 해결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이번처럼 매매 잔금, 대출, 인테리어 공사대금이 동시에 한 날짜에 걸리면 5천만원의 빈자리가 당사자 모두를 묶어버린다. 계약금이 크다는 사실만으로 잔금일까지 아무 일도 없다고 볼 수는 없었다.
그 뒤로 나는 대출을 받아 집을 사는 손님에게 “은행에서 3억원 나온다고 했습니다”라는 말만 듣고 넘어가지 않는다. “만약 2억5천만원만 나오면 나머지 5천만원은 어디서 마련합니까?”라고 이번 사건의 숫자를 그대로 넣어 다시 묻는다.
손님이 바로 답하지 못하면 잔금 전 공사를 시작하는 것부터 다시 생각해보라고 말한다. 잔금 전 인테리어를 꼭 해야 한다면 공사를 허락한다는 특약 한 줄로 끝내지도 않는다. 잔금이 틀어졌을 때 이미 진행한 공사와 공사비를 누가 감당할지까지 당사자들과 미리 이야기한다. 예상하고, 또 예상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 누구에게 어떤 돈이 먼저 나가야 하는지까지 시뮬레이션을 그려본다.
그래도 가장 안전한 순서는 바뀌지 않았다. 인테리어 일정이 급하고 매도인이 집을 먼저 비워줄 수 있어도, 대출을 끼고 들어오는 매수인이라면 나는 더 강하게 말한다.
잔금 다 치르고 난 다음에 집에 손 대라. 그게 내가 이 일을 겪고 나서 손님들에게 하는 말이다.
